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쿠시마 정화조 의문사 사건 (문단 편집) === [[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]]와 관련되었다는 설 === 이 후쿠시마 정화조 의문사 사건이 발생하고 22년이 지난 [[2011년]], 사건이 발생한 장소와 멀지 않은 곳에서 [[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]]가 일어나자 이 사건과 연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. 왜냐하면 죽은 청년이 생전에 [[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]]의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하청회사의 영업사원이었기 때문이다. [[1989년]] 1월 6일에 [[후쿠시마 제2 원자력 발전소]]에서 사고가 일어났다고 한다. 재순환 펌프의 부품이 깨져서 깨진 부품의 일부가 원자로 안에 끼어 들어갔는데,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[[1988년]] 연말부터 이미 재순환 펌프에 이상이 있다는 경보가 울렸지만 이를 무시하고 원자로를 계속 가동한 결과 레벨 2에 해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. 당시 이 원자로를 책임지고 있던 책임자는 본래의 책임자들이 신년 휴가를 가는 바람에 대신 원자로를 책임지고 있던 상황이었다. 엄밀하게 말하면 이 사람의 책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[[도쿄전력]] 본사에 소환되어 책임을 추궁받은 뒤 [[후쿠시마현|후쿠시마]]로 돌아가는 길에 [[우에노역]]에서 투신자살했다. 그런데 이 투신자살한 직원은 정화조에서 의문사한 청년의 동료였다. 그래서 원전을 반대하는 단체 측에서는 이런 관점에서 정화조에서 의문사한 청년은 우에노역에서 투신자살한 동료의 죽음의 진상을 파헤치다가 도쿄전력을 적으로 돌리게 되었고, 결국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된 것이 아니냐고 추측했다.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는 폭발이 일어나기 전부터 중대한 결함이 있었다는 사실이 발전소에서 현장 감독을 역임했던 히라이 노리오에 의해 폭로된 바 있다. 히라이 노리오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결함에 대해 폭로한 것은 이 청년이 정화조에서 의문사를 당하고 7년이 지난 [[1996년]]이다. 히라이 노리오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는데, 발전소 측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쉬쉬하고 은폐했다고 밝혔다. 그래서 청년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결함을 언론에다 폭로하려다 의문사를 당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. 다만 이 경우 청년이 가까운 지인이었던 A교사의 숙소 정화조에 산 채로 들어가게 된 이유와는 크게 연관되는 설명을 할 수 없다. 또한 주변에는 다른 교사들도 살고 있었고 정화조 뚜껑이 열려있었기 때문에 소리를 지르면 높은 확률로 구출받을 수 있었다. 도쿄전력이 비도덕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왔고 그로 인해 [[블랙 기업]]이라는 악명을 써 온갖 추문의 중심에 선 것은 사실이나 본 사건과는 별개의 사실에 불과하다. 또한 발전소의 결함을 폭로한 현장 감독 히라이 노리오도 암살되지 않고 버젓이 살아있으며 도쿄전력의 정직원도 아니고 하청업체의 일개 말단 영업사원에 불과한 청년을 왜 정화조에 욱여넣는 수고를 들이면서까지 암살하느냐는 반론도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